간호교육 100년의 개관

서울대학교 간호교육 100년의 연대표

서울대학교 간호교육 100년의 개관

서울대학교 병원의 전신인 대한의원이 1907년 간호교육을 명문화한 이래, 서울대학교 간호교육은 2007년으로 100주년을 맞았습니다. 그 100년, 즉 20세기의 한국사는 일제의 강점, 광복과 분단, 한국전쟁, 군사독재정권 등 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산업화와 민주화를 달성해가는 과정의 연속이었습니다. 서울대학교의 간호교육은 20세기 한국사의 곡절을 거쳐 오늘날 국민의 건강증진을 담당하는 일주체로 자리매김하기까지 그 어느 학문 분야보다도 극적으로 성장하였습니다.

 

대한제국기 고종은 국가 중흥과 부강의 기틀을 마련하기 위해 법관양성소, 관립의학교, 농상공학교 등을 설립하고 근대적인 신교육을 실시하였습니다. 또한 광혜원, 의학교 부속 병원, 대한적십자사병원 등의 신식 의료기관을 설립하여 백성의 치료·위생·구료와 의학 연구와 교육에 이바지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나 일제의 국권 침탈이 심화되면서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담당한다는 명목으로 설치된 통감부는 내정 전반을 간섭하였고, 1907년에는 대한제국의 신식 의료 관련기관을 모두 통합하여 대한의원을 설립하게 하였습니다. 이때 학부 소속이던 의학교도 대한의원 소속으로 편입됨으로써 한국의 의학교육은 병원을 중심으로 재편되었고, 대한의원이 산파와 간호부의 양성을 담당하기로 명문화함에 따라 서울대학교의 간호교육은 병원의 관할 하에 탄생하였습니다.

 

1910년 일제의 국권 강탈 이후 대한의원은 조선총독부의원으로 개칭되었습니다. 그리고 일제는 한국인에게 배일사상을 고취할 우려가 있는 고등교육보다는 실무를 위주로 하는 초등교육을 보급할 것을 방침으로 삼았습니다. 조선총독부의원의 산파와 간호부 교육도 병원에서 의사를 보조할 실무 인력의 양성을 목표로 하였고, 졸업생이 상급 학교에 진학하여 교육자나 연구자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길은 조선 내에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1916년 경성의학전문학교, 1926년 경성제대 의학부 본과 설치 등으로 의사의 교육기관은 고등교육으로 상승되었으나 산파와 간호부의 교육기관은 여전히 1928년에 조선총독부의원을 인계한 경성제대 의학부 부속의원, 새로 설립한 경성의학전문학교 부속의원 등의 병원에 부속된 기술계 양성소(과)로 존재하였습니다. 이러한 교육기관의 위상 차이는 병원 업무에서 간호부의 낮은 지위로 연결되었습니다. 그러나 신식 교육을 받은 여성이 극히 드물었던 이 시절, 조산과 간호는 여성의 일로 간주되어 여성이 신식 교육을 받고 전문 직업을 가질 수 있는 몇 안 되는 통로였습니다. 식민지 조선 내 최고 수준을 자랑하던 국립의 조선총독부의원, 경성제대 의학부 부속의원, 경성의학전문학교 부속의원의 산파·간호부 양성소(과)를 졸업한 조선인 학생들은 산파나 간호부 면허를 받아 직업 활동을 하면서 여성·간호부의 지위 향상 운동이나 독립 운동에도 참여하는 등 적극적인 신여성으로 활동하였습니다.

 

1945년의 광복은 병원에 소속되어 병원 실무를 주로 가르치던 서울대학교의 간호교육의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1946년 미군정은 일제 강점기의 여러 학교들을 아울러 국립 서울대학교를 발족하였는데,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은 경성제대 의학부와 경성의학전문학교를 통합하여 탄생하였고, 양 학교 부속의원에 소속되었던 간호부·산파 양성소(과)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부속 고등간호학교로 계승되었습니다. 이로써 서울대학교의 간호교육은 정식 교육기관에 편입되어 이후의 발전을 기약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비록 일제 강점기의 간호교육제도로 인해 고등 간호교육제도가 미비하고 한국인 간호교육자가 부족하였기 때문에 여전히 기술 교육에 중점을 둔 3년제 학교로 설립되었지만, 고등간호학교는 처음부터 대학 수준으로의 승격을 지향하였기 때문에 이를 위해 실력 배양에 힘썼습니다.

 

고등간호학교의 대학 과정으로의 승격 의지가 현실화된 것은 한국전쟁 이후 서울대학교의 전쟁 피해를 복구하고 교육과 연구를 위한 기반을 다진 미네소타 프로젝트를 통해서였습니다. 간호학교의 교원과 학생, 미네소타 대학의 간호고문들의 노력과 지원으로 교수들의 해외 유학, 교육지원시설의 마련 등이 추진되었고, 마침내 1959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 간호학과가 개설되었습니다. 이는 국립대학교에는 최초로 개설된 4년제 대학과정의 간호교육기구였으며, 이후 서울대학교 간호학과는 최고의 국립 간호교육기구로서 전국의 간호교육과 연구활동을 선도하는 국가적 사명을 담당하였습니다. 일정 이상의 수준을 갖춘 간호교육자의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시절, 서울대학교 간호학과는 1964년에 대학원 석사과정을, 1984년에 박사과정을 개설하여 다수의 간호교육자를 직접 양성하는 한편, 전국의 간호학교, 간호전문대, 4년제 간호학과의 교수들을 재교육하여 간호교육자의 자질을 향상시켰습니다. 또한 의학과의 교과목을 기준으로 질병-신체기관을 중심으로 짜여 있던 교과과정을 1970년대에 간호 대상자를 중심으로 획기적으로 재편함으로써 한국의 간호학이 독자적인 학문으로 정립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였습니다. 그리고 간호학과의 교수와 졸업생들은 자신의 전공영역별로 간호지식체를 개발하고 관련 학회를 조직하는데 앞장서, 전국적·국제적인 학문 교류와 한국 간호학의 수준 향상에 기여하였습니다.

 

이러한 성장을 바탕으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간호학과는 1992년에 다시 국립대 최초로 간호대학으로 분리 개편하였습니다. 서울대학교 내 하나의 단과대학으로 출범한 간호대학은 1995년 간호과학연구소의 설립, 2000년 교사의 신축, 2002년 학생 기숙사 신축 등을 통해 그 위상에 걸맞은 체제를 정비하였습니다. 그리고 1999년에는 교과과정을 건강증진을 중심으로 개편하였고, 보건소와의 산학협력과 대학간호센터의 설립 등으로 간호학의 학문성과를 지역사회로 환원하려는 노력을 가속화하였습니다. 또한 연구의 측면에서도 다학제간 연구, 국제적 협동연구 등을 통해 간호연구의 범위를 넓히고, 국내 간호학의 수준을 국제적 수준으로 향상시키고 있습니다. 서울대학교 간호대학은 이러한 활동을 통해 국민의 보건과 복지의 향상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졸업생들도 임상 간호사뿐 아니라 대학교수,·연구원, 정부기관, 행정계·법조계 공무원, 보건교사 등으로 다양하게 활동하면서 사회 곳곳에서 이러한 흐름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1907년 국권 침탈의 혼란 속에서 태동한 서울대학교의 간호교육이 광복 이후 기술계 고등학교인 ‘간호학교’를 거쳐 현재의 간호대학에 이르기까지 지난 100년간 비약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데는 국가 예산, 해외 지원과 함께 동문들의 노력이 큰 힘을 발휘하였습니다. 서울대학교 간호교육이 밟아온 지난 100년간의 궤적을 여기에 되짚어 보는 것은 그간 노력하신 많은 분들의 공적을 기리면서, 동시에 서울대학교의 간호교육이 앞으로도 ‘간호가 여는 건강한 미래’의 실현을 위해 앞장설 것을 다짐하는 작업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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